정의를 찾는 소녀: 시리즈 8편 – 정의의 세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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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찾는 소녀: 시리즈 8편 – 정의의 세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모든 생각은 존중받아야 한다. 정의를 열망했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는 일 또한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체념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한 세대의 기억

우리는 기억한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던 시간, 정당함을 향한 열망이 사람들의 몸을 일으켜 세우던 순간. 그것은 단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한 세대가 정의를 향해 몸으로 말했던 서사였다.

그들은 비로소 ‘시민’이 되었고, 정치적 존재로 태어났다. 철학자 아렌트는 “행동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야말로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 순간, 우리는 존재했다.

2. 그러나 지금은

정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피로감, 환멸, 체념이 자리를 대신했다. 한때 정치적 열정은 유행처럼 소비되고, 이제는 ‘조용히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의의 세대는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잠시 침묵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정의의 열정은 ‘공동체적 실천’에서 ‘개인적 생존’으로 방향을 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3. 다시 세대를 말할 수 있을까

‘세대’라는 단어는 자주 오용된다. 그러나 그것이 동일한 경험과 기억, 정서를 공유한 이들의 연대를 뜻한다면, 우리는 다시 정의의 세대를 말할 수 있을까?

철학자 카를 만하임은 “세대는 생물학적 연령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공유”라 했다. 그러므로 정의의 세대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새로운 사건, 새로운 불의, 새로운 언어가 그것을 불러낸다면.

4. 정의를 다시 언어화하기

정의의 세대가 다시 오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필요하다. 말할 수 있어야, 들을 수 있어야, 모일 수 있다. 지금은 언어가 부족하다. 정의는 있지만, 그것을 말할 단어들이 사라지고 있다.

언어는 기억을, 기억은 감정을, 감정은 행동을 낳는다. 정의는 말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시, 아주 단순한 말부터. “그건 옳지 않아.”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다뤄지는가.”

5. 다시 타인을 향해 걷는 일

정의의 세대는 ‘다른 사람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넘어서 타인의 고통에 다가갔다. 그 감각이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공감과 연대의 문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철학자 레비나스는 말한다. “타자의 얼굴을 응시하는 순간, 우리는 도덕적 존재가 된다.” 정의의 세대는 결국 타자의 얼굴을 응시한 사람들이었다.

6. 정의의 세대를 다시 부를 때

우리는 정의의 세대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바로 그 세대가 될 수 있다. 더 이상은 유산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으로. 정의는 행동의 총합이며, 선택의 누적이다.

오늘, 아주 사소한 불의 앞에서 멈춰서고, 말하고, 함께 걷는다면—그 순간 정의의 세대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정의의 세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바로 그 세대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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