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찾는 소녀: 시리즈 7편 – 다음 소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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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찾는 소녀: 시리즈 7편 – 다음 소녀는 누구인가?

모든 생각은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 정의를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앞으로 정의를 말하게 될 이름 없는 이들의 가능성 또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 ‘정의의 소녀’는 누구였는가

우리가 기억하는 ‘정의를 찾는 소녀’는 특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학생이었으며, 노동자였고, SNS 계정 너머에서 짧은 문장을 올리던 이였다. 그녀는 이름보다 상징이 먼저 불리었고, 그 상징은 시대의 정서를 품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모든 관계는 ‘너’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그녀는 바로 우리가 말 걸어야 할 ‘너’였다. 어떤 추상도 아닌, 가장 가까운 타인.

2. 다음 소녀는 어디에 있는가

다음 소녀는 지금의 불의 앞에 분노하는 누군가일 것이다. 친구의 해고에 눈물짓고, 교실의 차별에 침묵을 깨고, 길거리에서 핸드폰으로 현장을 기록하는 누군가. 그들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매일 작고 단단한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

정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사적인 순간에서 태어난다. 다음 소녀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단지 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3. 말할 수 있는 세상인가

우리는 다음 소녀가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그녀가 정의를 말했을 때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많은 이들이 첫 목소리를 낼 때, 그 목소리는 종종 왜곡되고 조롱받는다.

철학자 리차드 로티는 “공공의 언어가 가능해야 공공의 정의도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그 언어를 제공하고 있는가, 아니면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가?

4. 정의는 유산이 아니라 선택이다

촛불을 들었던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행동의 습관이며, 침묵하지 않는 태도다. 정의는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반복해서 선택해야 하는 결단이다.

다음 소녀는 우리가 만들어주는 영웅이 아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나아가는 개인이다. 우리는 그 곁에서 길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한다.

5. 새로운 얼굴의 정의

다음 소녀는 우리가 기대하는 정의의 얼굴과 다를 수도 있다. 그녀는 온건할 수도, 급진적일 수도 있다. 때론 조용히 글을 쓰고, 때론 거리로 나아갈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다양한 정의의 얼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의는 고정된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감각이다. 새로운 정의는 늘 낯설다. 그러나 낯설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6. 우리는 다음 소녀의 증인이 될 수 있을까

정의를 말하는 이의 곁에 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정의의 실천이다. 다음 소녀가 말할 때, 우리는 조용히 들어주고, 왜곡하지 않으며, 그 언어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수 있을까?

철학자 아도르노는 “말할 수 없는 시대에 말하는 것이 윤리”라 했다. 다음 소녀는 그 윤리를 실천할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윤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다음 소녀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지켜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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