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찾는 소녀: 시리즈 10편 – 정의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한 질문
모든 생각은 존중받아야 한다. 정의를 끝까지 따라간 사람의 침묵도, 그 앞에서 질문을 멈춘 사람의 조심스러움도 모두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1. 정의는 끝이 있는가
우리는 정의를 찾는다. 어떤 이는 광장에서, 어떤 이는 법정에서, 어떤 이는 일상의 선택에서. 그러나 정의는 언제 완성되는가? 재판이 끝나고, 법이 제정되고, 사건이 잊힌 그 이후. 그곳에 정말 ‘정의’가 존재했는가?
철학자 아감벤은 “정의는 종종 그 부재를 통해만 감지된다”고 했다. 완성된 정의는 우리 눈앞에 없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향해 걷는 중이다.
2. 정의가 침묵하는 순간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정의는 멈춘다. 말로는 부족한 순간, 어떤 고통은 언어를 거부한다. 우리는 그 침묵 앞에서 ‘정의가 끝났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침묵은 끝이 아니라, 다른 질문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정의는 누군가에겐 대답이어야 했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질문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정의를 강요하게 된다.
3. 질문 없는 정의는 폭력이다
확신에 찬 정의는 때로 가장 위험하다. 자신의 정의가 유일하다고 믿는 순간, 타인의 경험과 고통은 사라진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은 사유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정의의 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확신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이다. “정말 이것이 옳았는가?” “누군가의 고통은 남아있지 않은가?”
4. 정의는 완성이 아니라 관계다
정의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대화다. ‘그때 옳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불안정하지만, 인간적이다. 정의는 논리보다 감각에 가깝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말한다. “정의는 언제나 도래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희망이다.” 우리는 다만, 그 희망에 닿기 위해 매일 조금씩 묻고, 멈추고, 되짚어야 한다.
5. 정의는 누구에게 필요한가
우리는 정의를 말할 때 종종 잊는다. 정의는 권력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에게, 구조에서 밀려난 이에게, 끝내 해명되지 않은 이름에게 필요하다.
정의의 마지막은 항상 ‘인간’이다. 제도나 언론이나 사상보다 앞서, 고유한 한 사람. 우리는 그 사람의 고통을 끝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의를 말할 수 있다.
6. 그리고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정의의 끝이 아니라, 지금의 중간에서 우리는 서 있다. 아직 묻지 않은 질문, 아직 들리지 않은 목소리, 아직 닿지 못한 고통. 우리는 그 모든 ‘아직’들 속에서 정의를 붙잡고 있다.
그래서 정의는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기에 계속 질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정의의 길 위에 있다.
당신은 정의의 어디쯤에 서 있는가? 끝이라고 믿는 그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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