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찾는 소녀: 시리즈 5편 – 정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는가?
모든 생각은 존중받아야 한다. 정의를 향한 시도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가오며, 때로는 이상과 시스템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1. 이상으로서의 정의, 현실로서의 시스템
정의는 원래 철학의 영역에 있었다. 플라톤에게 정의는 인간의 영혼과 국가의 조화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동일한 것은 동일하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이었다.
우리는 이제 정의를 시스템에 담고자 한다. 법과 제도, 규범과 알고리즘. 정의를 ‘작동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 그러나 정의는 그렇게 간단히 작동하는 기계인가?
2.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가?
정의가 시스템이 되는 순간, 우리는 반드시 묻게 된다. “이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정의는 공정성”이라고 했다. 즉,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면 그것은 정의를 가장한 불의일 뿐이다.
빈곤, 교육격차, 의료 불균형, 젠더 문제… 시스템은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할 때 오히려 정당화를 제공하는 도구가 된다.
3. 알고리즘과 코드의 정의
오늘날 많은 결정은 알고리즘에 의해 이루어진다. 범죄 예측, 채용 시스템, 대출 승인. 인공지능은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고 여겨지지만, 그 학습데이터와 설계자는 인간이다. 결국 편향은 코드 속에, 시스템 안에 존재한다.
철학자 샌델은 말한다. “공정한 과정이 항상 공정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은 공정함을 가장하지만, 우리는 그 구조 속에서 차별받고 있다.
4. 정의는 설계될 수 있는가?
정의로운 시스템이란 무엇일까? 단지 형식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가? ‘정의’는 단지 법률의 언어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정의를 “사람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의 집합”이라 정의했다. 즉, 정의는 법적 조항이 아니라 인간 삶의 실질적 질에 있다. 시스템은 그 조건을 설계할 수 있는가?
5. 시스템과 인간의 긴장
시스템은 객관성과 반복성을 가진다. 반면 인간은 감정과 상황, 맥락 속에 있다. 그래서 정의는 시스템 안에 갇힐 수 없다. 오히려 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정의는 살아 움직인다.
푸코는 권력과 시스템이 ‘정의’를 말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는 시스템이 말하는 정의는 종종 통제와 감시를 정당화하는 언어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언어에 속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6. 정의는 시스템을 넘어야 한다
정의는 시스템의 안정성 안에서 자랄 수 있지만, 진짜 정의는 시스템을 넘는 순간 탄생한다. 그것은 ‘예외를 위한 구조’, ‘소수를 위한 설계’, ‘목소리를 위한 유연성’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정의는 철학이자 기술이며, 감정이자 제도다. 우리는 지금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시스템에 정의를 담으려 한다. 그러나 시스템은 정의를 담을 그릇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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