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위는 낮았지만, 그 자리는 무겁다
2015년 한화 이글스는 변화의 시즌을 겪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 체제 하에 새로운 전략과 분위기 속에서 팀은 조금씩 재정비되어 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조용히 서 있었던 포수, 바로 허도환이다. 그는 그해 포수 수비 이닝 기준 14위에 올랐다. 총 88경기, 620.2이닝. 수비율은 0.992.
도루 저지율은 23.5%, 리그 평균에 비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수치였다. 그러나 허도환의 진짜 가치는, 숫자보다 ‘존재감’에 있었다.
2. 수비란 무엇인가 - '받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
포수의 수비는 단순히 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투수의 리듬을 읽고, 타자의 심리를 꿰뚫으며, 내야진의 움직임까지 조율하는 종합예술이다. 허도환은 2015년 시즌 대부분의 시간을 ‘받아내며’ 보냈다. 한화의 마운드는 불안정했고, 잦은 교체와 부상이 반복됐다. 그런 가운데 그는 주전도, 확실한 백업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애매한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조직에는 꼭 필요하다. 허도환은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3. 공격에서 드러난 의외의 존재감
2015년 허도환의 타율은 0.252, 출루율은 0.325였다. 물론 뛰어난 수치는 아니었지만, 중요한 순간에 맞춰 나오는 희생번트, 2루타, 그리고 견제 플레이. 그는 한화가 위기를 넘기거나 흐름을 바꿔야 할 타이밍에 작은 불씨를 던지는 선수였다.
무수한 하이라이트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박수 소리를 멈춘 경기장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던 사람. 숫자가 기록하지 못한 장면들이, 허도환의 공격력을 입체적으로 설명해준다.
4. 철학으로 본 포수의 태도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진정한 권력은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타격보다, 조용한 리드가 때론 팀의 운명을 바꾼다.
허도환은 당시 팀의 에이스가 아니었다. 타선을 이끄는 4번 타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매 경기, 홈 플레이트 뒤에서 조용한 시선으로 경기를 읽고 있었다. 그가 투수의 사인을 바꾸던 순간, 혹은 외야수에게 작은 손짓을 건네던 순간들이, 어쩌면 경기의 분기점이었을지도 모른다.
5. 팬들의 눈에 비친 허도환
한화 팬들은 그해 "허도환이 있는 날, 마운드가 덜 흔들렸다"고 말했다. 투수의 실책이 나와도 헬멧을 벗고 걸어가 등을 토닥이고,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투수를 보호하며 볼배합을 바꾸던 장면들. 팬들은 ‘희생’이 무엇인지 허도환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지만, 감정의 경기이기도 하다. 허도환은 그 감정의 온도를 조절해주던 사람, 팀의 체온 유지자였다.
6. 순위보다 깊은 가치
그해 허도환은 단 한 번도 주목받는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를 신뢰했고, 감독은 그에게 ‘현장형 포수’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의 수비 리드 하나하나가 무너진 마운드를 붙들었고, 그의 땅볼 타구 하나가 긴 이닝을 정리했다.
14위라는 순위는 낮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그의 기록은 작았지만, 경기의 흐름을 바꾼 장면은 그의 손끝에서 시작되곤 했다.
7. 야구는 삶의 축소판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외곽에서 구조를 지탱해야 하고, 누군가는 실패하는 이들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허도환은 2015년, 그런 역할을 맡았다. 패배가 많았던 그해, 그는 ‘패배에 굴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쳐줬다. 그리고 그것은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가치다.
8. 독자에게 남기는 질문
성공을 향한 경쟁이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조용한 사람’을 돌아보는가? 기록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묵묵히 구조를 지탱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허도환의 2015년은, 기록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삶의 온도와 공동체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숭고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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